신문 읽으신 문수스님 etc.



                                          <사진출처 http://apsan.tistory.com>

6일 문수스님의 초재(죽은 뒤 이레만에 올리는 재)가 있었다. 유골수습 과정에서 사리24개가 나왔다고 한다. 관련 기사에서 사진 하나가 눈에 띈다. 3년간 가부좌를 틀고 면벽수행을 해오신 스님의 거처 한 켠에 쌓인 신문 뭉치 사진이다. 대부분 같은 절의 견월스님이 읍내에 들릴 때마다 사다 드렸었다고 한다. 그렇게 스님은 세상과 소통하셨던 모양이다. 비록 속세를 등진 산골의 작은 암자에서의 구도생활이었을지언정 스님에게 있어서 깨달음을 향한 수행은 결코 속세의 중생들이 겪는 번뇌의 구체적인 모습들과 괴리된 뜬구름잡기일 수 없었던 듯하다. 

그렇다면, 종교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하며 소신공양은 '구도의 방편으로만 사용되어져야'한다는 논리 하에 문수스님의 경우 속세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됐다는 이유로 이를 폄훼하는 사람들의 종교이해는 얼마나 가벼운 것인지. '정치'가 달리 '정치'가 아니다. 중생을 고통에서 구제한다고 했을때, 그 고통의 물질적 기반을 구성하는 미시적, 거시적 계기들의 총체가 바로 '정치'다. 소신공양이라는 '종교'적 의식은 속세의 '정치'와 분리되어야한다는 입장은 속세의 중생들을 둘러싼 고통의 총체성을 있는 그대로 대면하지 않고, 그저 구도를 위한 구도, 종교를 위한 종교를 추구한다는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도 마찬가지다. 내 이웃의 삶이 바로 그러한 '정치' 안에서 전개되는 것이라면,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에게 정치는 신앙과는 다른 영역의 그 무엇, 개인의 선호에 따라 관심을 가질 수도 갖지 않을 수도 있는 성질의 것이 될 수 없다. 

말하자면 어떤 종교에서건,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내세우며 종교영역의 순수성, 독자성을 강조하는 견해는 대부분 현실유지를 위한 이데올로기 혹은 사이비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종교가 딱 그 수준에 머무를 때 아편이 되는 것이다.

덧글

  • -_- 2010/06/07 05:28 # 삭제 답글

    권력자가 빵부스러기를 던져주는게 자비가 아니지.
    중생들을 구제하는 마음이 바로 자비.
댓글 입력 영역